일요일에 무기력하게 집에만 있을 순 없지.. 운동도 안 갈 거 산책이라도 가보기로 했다.
보통 목적지 없이 그냥 걷지만.. 오늘은 이유 없이 열차를 타보고 싶었다.
첨엔 Bad Honnef를 가보려고 했다. 트램 타면 사실 코앞인데 지금까지 한 번도 안 가봤다는 게 스스로도 믿기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근데 가려고 해도 명분이 있어야 되니까 구글맵을 켜놓고 둘러보는데 이거다 싶은 스팟이 없었다.
그래서 조금 더 내려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아래로 내려가면 Unkel... Erpel... 등등이 있는데 Erpel에 보니까 Erpeler Ley라는게 있더라.
안 그래도 며칠 전에 로렐라이(Loreley)에 대해 주워 들어서 가볼까 생각 중이었는데 멀지는 않지만.. 오늘 가기엔 좀 그렇고 어차피 같은 Ley인데 어느 정도 비슷하겠지.. 싶어서 이곳으로 결정
위키를 보니 'Ley'는 옛날말로 '절벽' 또는 '험한 바위 지형'을 이르는 단어라고 한다.
하늘엔 먹구름이 잔뜩 껴있었지만, 다행히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Erpeley Ley에 가기 전에 근처에 Brückenpfeiler Erpel라는 게 있다길래 잠깐 들러보았다.
과거에 이곳에는 Ludendorff 다리가 강 건너편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1945년 3월 17일에 무너졌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는 교각만 남아있는 상태.
구글맵이 알려준대로 Erpeler Ley를 향해 가는데, 두 번이나 길을 잘못 들었다. 길 옆에 있는 집 1층에서 날 지켜보던 아저씨가 매우 친절하게 여기 아니라고 알려주셨다 ㅋㅋ
그러고 나서 좀 더 걸으니 표지판 발견.
가는 길은 너무나도 적막했다. 사람이 적을 거라고 예상은 했고 그래서 온 건 맞는데 올라가는 길에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등산길이래 봐야 별 거 없다. 경사도 높지 않고 20분 정도 걸으면 도착.
본격적으로 길을 따라가면 라인강 전경을 볼 수 있다. 가슴이 웅장해진다.
중심에는 Friedenskreuz(평화의 십자가)가 있다. 이곳이 포인트다.
평화의 십자가를 지나 왼쪽으로 가면 동쪽 라인강을 볼 수 있다.
한 번만 보기 아까워서 한 바퀴 또 돌았다.
이젠 내가 처음 왔을 때보다 제법 사람이 많아졌다.
날이 맑았으면 더 좋았을까? 나는 이 분위기도 맘에 들었다
배가 고파질 시간. 산을 내려가보았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서 점심을 먹을 수도 있지만, 그건 너무 보람이 없잖아?
그래서 레스토랑을 찾아보긴 했는데.. 점심에 혼자서 20유로씩 주고 레스토랑을 가고 싶지는 않았다.
Pizzeria도 선택지 중 하나였지만, 그다지 끌리지는 않았고
분위기 있게 카페나 가기로 했다.
빵 하나, 케이크 한 조각 그리고 마키아토 한 잔을 시켜서 자리를 잡았다.
근데 개 같은거.. 영수증을 보니까 빵에 Eierlikör가 들어가 있는 게 아닌가!!
으음.. 이걸 바꿀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뭐 얼마나 술이 있겠어.. 하는 생각에 그냥 먹기로 했다.
결국 절반 먹고 포기했지만..
그래도 케이크는 너무나 맛있었다.
열차 시간이 될 때까지 카페에 죽치고 앉아있다가 나왔다.
Rosenmontag은 내일인데 오늘부터 무슨 축제가 있는 모양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코스프레를 하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뭔가 나만 동떨어진 느낌
열차 시간이 쪼끔 남아서 마지막으로 한 곳 더 가봤다.
지도에는 그냥 Tunnelportal(터널 입구)라고 표기되어 있긴 한데, 지금은 이동을 위한 터널은 아니고 가끔씩 터널 안에서 공연 같은 이벤트들이 있는 모양이다.
Tunnelportal을 마지막으로.. 복귀
이동 시간 포함해서 고작 3시간 밖에 안 되는 짧은 여행이었지만
간만에 좋은 경치 보며 힐링도 하고 후회 없는 하루였다!
단, 망할 Berliner mit Eierlikör 하나 빼면 말이지.. 하지만 고른 것도 나였고 바꾸지 않는 결정을 내린 것도 나였다 ㅠㅠ
다음에는 Loreley를 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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