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율을 처음 시작했던 때가 생생히 떠오른다.
제대 이후 복학한 2015년도 2학기..
당시 나는 2학년 애송이일 뿐이었고,
게다가 군대 가기 전 2학년 1학기 때, 전공이 싫다고 깝치다가
2학기에 필요한 과목을 수강도 안 한 상태였다.
덕분에 2학기는 고통 그 자체였고 어떻게 버텼는 지도 모른다..
혼자 하는 건 혼자 힘들면 되는데, 문제는 팀플이 너무나 많았다.
매우 죄송하게도 지금 생각해 보면 많은 폐를 끼쳤다..
진작에 다음 학기는 휴학하겠다고 마음먹었고,
16년도 3월인가.. 그때부터 조율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근데 왜?
그게 기억이 안 난다.
운명이 날 이끈 것인가 크킄.ㅋ...
아무튼 왜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배워온 과정은 꽤나 선명하게 기억한다.
끼가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오만함이 치솟았던 흑역사..
도 있었고..
그리고 그때 사실 학교를 때려치우고 조율 배우는데 집중해 볼까 생각한 적도 있다.
학교를 때려치우겠다는 말은 안 했구, 조율을 직업으로 삼고 싶다는 뉘앙스의 말씀을 선생님께 드린 적이 있는데
선생님께서 그래도 대학은 웬만하면 졸업하라는 말씀을 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 말씀 하나 때문에 1년 뒤에 조율을 잠시 중단하고 복학을 했고,
꾸역꾸역 졸업까지 했다. 역시 팀원들께 폐를 끼치며
다시 19년도에 초과 학기를 병행하며 다시 조율을 시작했다.
정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학원에 갔다.
그리고 6개월 만에 따낸 기능 경기 대회 2등..
기쁨은 하루뿐이었고 다음 날부터는 공허함이 찾아왔다.
조율을 배우다 보면 가끔 한번씩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 순간이 온다.
그때도 그랬다.
당시에는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닌지도 모른다.
경기 대회가 끝나고 난 뒤로는 일주일에 세 번만 학원에 갔다.
그리고 약 10 개월 후 산업 기사 시험에서 보란 듯이 탈락!
조율 연습하는 횟수가 줄었기 때문에 탈락한 것은 아니다.
그냥 내가 살짝 오만했고, 바보였을 뿐이다.
이후 나는 다음 시험을 준비하는 대신 독일행을 준비했다.
선생님은 매우 훌륭하고 좋은 분이셨지만,
학원의 특성상 한계는 명확하다.
내 목표는 꼴에 정말 높은데
여기에서 이렇게 배워서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나름 철저히 준비해서 21년 10월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고,
2년이 조금 더 흐른 지금, 이곳에 있다.
운이 좋았음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정말 운이 좋았다 나는.
독일에 미리 정착해 살고 있던 든든한 친구 덕에 시작점부터 조금은 앞서 있었고,
온 지 7개월 만에 아우스빌둥을 시작했다.
(특히 후자는 지금 생각해 보면 기적에 가까운 결과긴 하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할 수 있을까 싶다.)
독일에 온 후로 아우스빌둥 자리를 찾기 위해 처음엔 주제도 모르고 회사를 골라서 지원했다.
음.. 여긴 너무 머니까.. 탈락!
여긴 뭔 듣보 회사지? 탈락!
직원이 140명?? 이런 데서는 일 못하지 ㅋㅋ 탈락!
결과는 당연히 모든 곳 서류 1차 광탈!
그제야 부랴부랴 사이트에 공고를 올린 모든 회사에 지원을 했고
그것마저도 모조리 퇴짜맞고 난 뒤에 한 짓이 바로 BDK(Bundes Deutscher Klavierbauer)라는,
우리나라로 치면 조율사 협회 같은 곳의 홈페이지에 들어간 것.
여기엔 Ausbildungsbetrieb이라고 해서 아우스빌둥 과정을 제공하는 회사의 목록이 쫘르륵 있었고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한 곳 한 곳 지원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제는 익숙해진 거절 메일을 줄줄이 받던 중 다른 답변을 하나 받았다.
내용인즉슨,
"우리는 아우스빌둥 과정을 지원하지 않지만 xxx회사에서 새로운 Azubi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곳에 지원해 보십시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Mir blieb keine andere Wahl.
즉시 하라는 대로 했다.
그리고 드디어 매우매우 기적적으로 인터뷰에 초대를 받았다.
와 그날은 얼마나 떨렸는지..
지금은 항상 출퇴근하는 길이지만 그 당시에는 비도 오고 있었고
길 자체도 느낌이 너무 새로워서 정말 두려움뿐이었던 기억이 난다.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일찍 도착해서 회사 주변을 서성거리기도 하고
회사의 주변 환경에 대해 친구들과 카톡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약속 시간 15시 드디어 문을 열고.. 입장.
당시에 사장은 없었고 Daniela가 있었던 것 같은데, 잠시 뒤에 사장이 왔다.
인터뷰가 시작되긴 했는데.. 말이 인터뷰지 사실상 회사 자랑을 한 시간 정도 듣고(이해는 사실 거의 못했지만..)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 며칠 뒤 메일을 하나 받았다.
근데 인터뷰가 3월이었는데, 4월부터 Praktikum을 하라는 게 아닌가..
당시 나는 아직 도르트문트에 살고 있었고, 회사는 본이었는데..
기차 타고 매일 3시간 출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정말 조심스럽게
"와타시.. 아직 본에 집도 없구 ㅠㅠ 차도 없어서 도르트문트에서 출퇴근을 할 수가 없어용 ㅠㅠ.. 정말 죄송하지만 제게 시간을 한 달만 주실 수 없을까요?????? 부탁드립니다 ㅠㅠ"
뭐 대충 이런 식으로 보냈고, 허락을 받아냈다.
아니 쓰다 보니까 자꾸 글이 길어지네.. 이렇게까지 자세히 쓸 건 아닌데
암튼 그렇게 5월부터 일을 시작했고, 솔직히 100퍼센트 만족하진 않았지만 나는 갈 곳도 없었고 여기서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어떻게 버텨오고 있다.
쓰고 보니까 어이없네?
운이 물론 좋긴 했는데, 써놓고 보니까 나 개고생 했잖아 ㅡㅡ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안정적인 지금의 삶이 늘 감사하다는 거
사실 다 아는 얘기지만, '운이 좋았다'에 내포된 의미는
'나는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빠르게는 아닐지언정 최소한 멈추지는 않고 달려왔고 다행히 어떻게 운이 조금 따라와서 성공할 수 있었다'
잖아?
그저 설명하기 귀찮고, 겸손을 떨 뿐이지
어쨌든 지금까지는 너무나 많은 행운이 겹쳐서 삶에 안정감이 생겼지만,
미래는 모른다.
그러니 현재에 감사하며 살자!
라고 결말을 지으면 아주 훈훈하겠죠??
(휘성 'Present'의 가사가 비슷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어서 요즘 꽂혀있다..)
조율을 시작한 후로 이렇게 나는 걸어왔고
이대로만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아
근데 여기서 慢, '게으를 만' 이 놈 하나만 조금 조심하면 좋을 것 같구나
자만 오만 태만 교만 이런 놈들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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